시개요]
전 시 명 : 이중섭특별전 2부 <그리움은 그림이 되어>
전시기간 : 2024. 6. 25.(화) ~ 2024. 8. 18.(일)
전시장소 : 이중섭미술관 1층 상설전시실
전시작품 : 이중섭 원화 및 자료 23점
[기획의 글]
이중섭미술관 이중섭 특별전 2부 <그리움은 그림이 되어>
우리나라에 유화가 알려진 것은 구한말이며 1899년 네덜란드계 미국인 초상화가 휴버트 보스(Hubert Vos, 1855~1935)가 유화로 <고종 초상화>를 그렸다. 20세기 초 우리나라에 서양화가 1호로 서울에 고희동이, 2호로는 평양에 김관호가, 여성으로는 나혜석이 있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조선인 일본 유학생들에 의해서 서양화가 유행하기 시작했는데 이중섭 또한 우리나라 서양화가 1세대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이중섭은 일본 문화학원 유학 중이던 1938년에 ‘자유미술가협회’에 작품을 발표한 이후 1956년 사망할 때까지 약 20년간 작품활동을 했다. 이중섭은 대부분 종이에 유채를 사용하여 그림을 그렸으며 몇몇 나무에 그린 작품도 있다. 특히 은지화는 서양화 사상 이중섭만의 독특한 매재(媒材)를 사용한 독보적인 것이었으며, 맥타가트에 의해서 미국 뉴욕의 근대미술관(MoMA)에 기증되었다.
엽서화는 이중섭이 문화학원에서 만난 일본인 연인 야마모토 마사코(山本方子)에게 글자 없이 오로지 엽서에 그림만으로 자신의 감정을 전달했던 특유의 작은 그림이다. 편지화는 편지에 사연을 적고 빈 공간이나 글 사이에 그림을 그린 것이다. 이중섭의 편지화는 가족에게 보내는 글과 함께 그때그때 생각나는 기억과 소망, 일상적인 자신의 마음을 전달하기 위해서 즉흥적으로 그려진 그림이다.
이중섭은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1950년 12월 초순 부인과 두 아들을 데리고 이북의 원산을 출발하여 부산에 도착했다. 부산에서 약 한 달을 머문 후 가족과 함께 1951년 1월경 제주도 서귀포로 피란을 와서 1년 가까이 살았다. 서귀포에서 이중섭 가족은 배급으로 생활하고 부추와 ‘게(蟹)’를 잡아 반찬으로 삼기도 하고, 주민들의 간곡한 부탁으로 전쟁으로 사망한 전사자들의 제사용 초상화를 그려주었고, 고마움의 표시로 주민들이 건네준 고구마를 받기도 했다. 특히 서귀포에서 ‘게’를 반찬으로 삼은 것이 미안해서 ‘게’그림을 그리게 되었다는 이중섭의 사연을 말해주듯 ‘게’는 이중섭 작품에서 마치 가족처럼 소중한 존재로 등장한다.
1951년 12월경 서귀포를 떠나 부산으로 건너간 이중섭 가족은 1952년 6월 부인과 두 아들을 일본으로 보내고, 홀로 그림을 그리면서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그림과 편지화에 담아내었다. 가족에 대한 이중섭의 애틋한 사랑은 편지가 되고, 그림이 되어 오늘날 우리에게 진한 감동을 전해준다. 절실하다는 것은 사랑과 그리움에 대한 다른 표현일 것이다. 부인 이남덕과 두 어린 아들을 위해서 현해탄을 사이에 두고 화가 남편으로서, 아빠로서 결코 해학성을 잃지 않았던 이중섭 그림들은 가족의 의미가 무엇인지 다시금 되돌아보게 한다.
끝으로 이번 이중섭 특별전 2부 전시는 현재의 이중섭미술관 건물에서 열리는 마지막 전시이다. 그동안 늘어나는 관람객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서 이중섭미술관 시설 확충 사업을 진행해 왔으며 2027년 재개관을 목표로 하고 있다. 올해 9월부터 2027년 재개관까지는 이중섭미술관 인근에 있는 창작스튜디오 건물에서 미술관을 운영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