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면 중앙의 아래에 한 벌거벗은 여인이 반듯하게 누워있고, 위쪽으로 두 아이와 한 남정네가 열심히 복숭아를 따는 장면입니다.

비스듬히 누워 과일을 따는 두 아이와 남정네를 바라보는 여인의 모습은 그지없이 흐뭇한 표정입니다.

이중섭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정물적 소재로서 꽃이나 복숭아를 자주 만나게 되는데 복숭아는 먹으면 오래 산다는 천도복숭아입니다.

친구인 시인 구상이 병들어 누워있을 때 이중섭이 복숭아를 그려주면서 이것을 먹고 빨리 쾌차하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런 복숭아가 탐스럽게 달려있는 복숭아밭에 가족이 어우러져 있으니 이야말로 유토피아가 아니겠습니까?

제주 시절부터 이중섭은 낙원을 모티브로 한 작품을 여러 점 남기고 있는데 은지화에 보이는 복숭아밭에서의 가족도 그 가운데 하나입니다.

은지화의 특징은 눌린 선묘에 의한 이미지의 구현이기 때문에 다분히 형태 위주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흔히 형태 화가니, 색채 화가니 하고 화가를 구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묘출 방법으로 본다면 이중섭은 다분히 형태 화가에 속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색채를 기피한다거나 색채에 의한 표현력이 떨어진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형태에 못지않게 풍부한 색채의 감정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림의 바탕이 딱딱한 합판이나 베니어판 같은 지지체일 경우 철필과 같은 도구를 사용하기 때문에 자연 형태의 구사가 두드러지게 됩니다.

은지화가 이에 속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