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지화는 이중섭의 작품 가운데서도 독특한 매재로 인해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담배를 싸던 속포장지를 펴서 이 위에다 못, 송곳 또는 철필로 드로잉한 것입니다.
은지화는 바탕 즉 지지체 자체가 납빛을 담고 있어 일반적인 천이나 종이와는 다른 특징을 지닙니다.
종이나 캔버스와 전혀 다른 매재이기 때문에 여기에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여러 제약이 따를 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색채를 가하는 바탕의 그림과는 다른 표현의 방법이 구사될 수밖에 없습니다.
송곳이나 철필로 이미지를 묘파해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자연 드로잉의 특징이 두드러집니다.
작가 자신도 언급하고 있듯 본격적인 작품을 위한 에스키스에 머물 뿐입니다.
바로 이 같은 한계와 매재의 특징 때문에 그 독자의 영역으로 굳어진 것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주변의 화가들이 이를 보고 자신들도 시도해보았지만 제대로 된 작품으로 남기고 있지 않습니다.
세 점의 은지화가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에 소장된 것도 이 독특한 매재의 발견과 그에 어울리는 독특한 방법을 구사해내었기 때문입니다.
이 독특한 매재와 방법은 원산 시절부터 시도했다는 증언도 있으나 현재 남아있는 은지화는 거의 부산 피난 시절에 그려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가까운 친구인 시인 구상은 약 3백 점의 은지화를 남겼다고 말하고 있는데 아무데서나 앉으면 은지화를 그렸다고 하니까
그린다는 점에서 비교적 자유스럽게 이루어질 수 있었고 그 숫자는 3백 점을 훨씬 능가했을 것이란 주장도 있습니다.
여기에 그려진 내용은 그가 다루었던 소재의 전체를 보여주고 있으면서도 특히 부산 시절에 주로 그렸던 아이들과 가족도가 중심을 이룹니다.
그만큼 자전적인 요소가 진한 내용으로 채워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