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시지의 작품에는 대개 등장하는 사물들이 모두 하나입니다.
<한라산>에서도 사람, 까마귀, 초가가 하나씩만 등장합니다.
언제가 그 이유에 대해 화가에게 물은 적이 있습니다.
“왜 선생님 작품에는 등장하는 사물들, 사람도, 배도, 말도, 까마귀도, 비바리도 모두 하나씩입니까?”
선생님은 말했다. “그림에 짝이 맞으면 긴장감이 사라지고, 표현하는 의미가 적어진다. 모두 하나씩만 그리는 이유는 관객이 그림 속 하나뿐인 대상과 대화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라고.
그래서 변시지 그림은 언제나 외롭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스스로 그림 속으로 들어가 대상들에게 말을 겁니다.
그때 비로소 그림 속 존재들은 외롭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화가가 생각하는 대중을 위한 나름의 배려인 것입니다.
그림을 그리는 것이 중요하기도 하지만 소통 또한 더욱 중요하다는 의미로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작품 <한라산>은 멋지게 잘생긴 한라산이 아니라 투박한, 동네 사람같이 소박하게 생긴 산의 모습으로 그려졌습니다.
첩첩이 쌓인 산 머리, 중천에 크고 둥근 태양이 떴습니다.
중첩된 산맥 아래 초가 한 채가 있고, 마당에서 까마귀와 말을 하는 화가 자신이 앉아있습니다.
변시지는 그림에서 흐름을 중시 여기는데, 특히 터치의 방향은 한 방향이 아닌 지형, 구름, 지질, 숲, 산맥 등 모양에 따라서 흐름을 유도합니다.
변시지 그림에는 소재가 적고, 생략하는 표현이 많아서 대개 화면의 분위기는 터치의 방향과 흐름으로 조정됩니다.
그래서 그의 화면은 꿈틀대듯이 요동을 치고, 한시도 떨림이 멈추지 않는 것입니다.
화면의 흐름은 작가의 감정을 표현하고 있는데, 같은 색이라도 선을 어떻게, 어떤 흐름으로 처리하느냐에 따라 소재들의 긴장감이 달라지게 됩니다.
<한라산>은 투박하지만 푸근한 모정을 닳았습니다.
한라산 산자락 아래에서 까마귀와 노는 작가 자신의 홀연한 모습이 정겹기도 한 그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