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은 소암이 행초서로 쓴 여덟 폭의 병풍입니다.
‘석등천운(石磴穿雲)’이라는 구절로 시작되는 이 시(詩)는 광해군 때 제주목사를 지낸 김치(金緻)가 지은 '등한라산(登漢拏山)’과 '영실(瀛室)’입니다.
핵심이 되는 구절을 한 번 감상해볼까요.
학을 타면 신선의 길을 잃지 않을 터이니, 봉소를 불며 도사를 만날까 기다리네.
백록을 타고 동천으로 바로 내려가면, 푸른 소를 탄 신선을 웃으며 만날 것 같네.
한걸음 한걸음 산을 오르며 시인의 마음에는 한라산이 어느새 신선세계로 바뀌어있습니다.
한라산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있는 이 두 수의 시는, 제주에 사는 선비라면 누구나 다 외우고 있었으며,
그렇지 못하면 제주 사람이 아니라고 타박을 받을 정도로 유명했습니다.
1978년 소암의 쓴 이 작품은 ‘소암체’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으로 대범하면서도 중심을 잃지 않고 긴 문장을 한 호흡에 내달리고 있습니다.
시의 내용과 글의 조형이 혼연일체가 되어 마치 신선의 풍채와 도사의 골격을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소암 또한 함께 신선이 됩니다.